Greener 님, 안녕하세요! 마케터 슬기입니다.

요새 며칠, 저는 '비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어요. 레스벗그리너가 늘 말하는 '필요한 만큼 사용하고, 불필요한 것은 덜어내는 행위' 말이에요. 단순 명료한 이 실천을 제안하면 할수록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우리는 도대체 왜 비워내야 할까? 비우면 가벼워지기 때문에? 가벼워지면 뭐가 좋은데?
더 올바른 선택과 판단을 할 수 있어. 생각을 정돈하고 마음을 다듬는 데 시간도 아낄 수 있고. 더 합리적인 삶이라구!

그런데 곱씹을수록 대답의 본질이 그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뭘까, 왜 비워야 할까. 비우는 삶의 가치가 무엇일까・・・. 한참 고민 끝에 답을 내렸습니다.

'비움은 그 어떤 실천보다 주체적이다'라고요. 

물론 '채움'도 그래요. 하지만 채움의 주체성은 비움이 선행될 때 강화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타인이나 사회적 가치에 많은 영향을 받아요. 스스로 내린 결정인 것 같아도, 선택의 요인을 따져보면 누군가에 따른 것일 때가 많죠. 반면에 비워내는 결정은 어떤가요? 저는 '곤도 마리에'가 무언가를 버리고 새 삶을 얻었다고 말할 때, 그것을 쉽게 버릴 수 없었어요. 무언가를 따라 살 때보다 훨씬 더 꼼꼼히 당위성을 따져봤죠. 비우는 건 그만큼, 아주 힘겹고 치열한 결정이에요.

위와 같은 답을 정의한 후에, 곧이어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비움은 채움을 위한 것'이라는 지점에요. 그러니까, 진짜 나의 것을 채우기 위해 비우는 것이에요.

오늘 에세이의 주인공 김해서 에디터도 그런 깨달음을 느꼈을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냥 채웠더니 오히려 기쁨과 이야기가 희미해졌다고 하네요. 이번 에세이를 통해 스스로 정한 분수를 지킬 때 주어지는 가치를 나눕니다.

주인 의식을 갖는다는 것

빈티지 쇼핑의 이점을 알면 벗어나기 힘들다. 한두 푼으로 구하기 힘든 외투나 니트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고, 한 벌씩밖에 입고되지 않으니 희소한 제품을 들인다는 기분에 취하기도 좋다. 게다가,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서 공수한 철 지난 옷들인 경우가 많아서 요즘 보기 힘든 레트로 디자인에 호의적이라면 구경해볼 법하다.

나는 누가 입었다거나 살짝 헤진 질감에 거부감이 없는 편이라 마음에 쏙 드는 게 아니라면 새 옷을 사지 않는다. 옷방 안의 거의 모든 게 구제숍 출신이다. 그 만족감은 특별하다. 돌고 돌아 옷이 주인을 제대로 찾았구나 싶어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패스트패션에 이목이 쏠리던 무렵, 괜히 내 쇼핑몰 리스트를 친구들에게 흘리기도 했다. 폐기될 뻔한 옷이 다시 사람 손에 들어가면 쓰레기도 줄어드니 일석이조 아니겠냐며. 친구의 표정을 흘긋 살폈을 때 그 얼굴에 혹하는 감정이 스치면 뿌듯했다.

신년이 밝고 옷방 정리에 나선 날, 내가 얼마나 명분 없이 옷을 소비했는지를 깨달았다. 분홍색과 친해지겠다고 산 진분홍 블라우스와 기본템이니까 쟁인 줄무늬 셔츠, 팔뚝 살을 빼고 입겠다며 들인 민소매까지. 한 번도 입지 않았거나 몇 번 걸치고 만 옷들을 분류했다. 대부분 가격에 혹해 결제한 빈티지였다. 옷걸이가 부족해 옷을 겹쳐 걸어놓느라 눈에 띄지 않아서 안 입은 경우도 있었으니 소비도 정리도 엉망이었다.

처음 빈티지 세계를 알았을 때의 감동은, 필요 이상을 원하는 해묵은 욕망과 결탁하여 '사고 또 사는' 소비의 연장으로 전락했다. 무신경한 쇼핑은 일면 광적이다. 매일 먹을 것도 아니면서 상하는 줄도 모르고 간식과 과일을 비축하는 것처럼. 이사 후, 옷방이 생기면서 절제 없이 사들인 모양이다. 큰 패브릭 백에 옷들을 되는대로 채워 버렸음에도 행거는 여전히 여유가 없다. 그걸 보고 생각했다. 사는 곳이 달라지면 삶의 정도(正度)를 다시 마련해야 하구나. 물건이 차지하는 자리는 새것이나 헌것이나 다를 바 없구나.

의미 있게 옷을 입고 싶다. 오래 남아 한 사람의 체형과 체취를 기억하도록 옷에게 역할을 준다고 생각해볼까. '여름이면 파란 에스닉 치마를 즐겨 입었다.', '베스트의 오염된 부분을 브로치로 덮어 입었다.' 같은 문장의 주인이 되어보는 것도 좋은 일일 거다. 빈티지를 사랑하는 취향이 단번에 바뀌진 않을 테니, 남의 것이었던 걸 진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테다. 물건 하나하나와 서사를 쌓으면 짐 무더기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을까. 나를 위해 형성된 공고한 생활공동체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

스스로 정한 삶의 정량, 내 삶의 역학을 인지하며 살고 싶다. 냉장고 속 시들한 야채로 카레 한 솥을 끓여냈을 때처럼 살뜰한 감각을 기억할 것이다. 고대 때부터 성인들이 중용의 미를 강조한 이유가 있겠지. 초과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즐길 줄 아는 내가, 계속 사면서도 부족해하는 나보다 내 삶의 주인다움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