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Greener 님.
볕은 포근한데, 방심하지 말라는 듯 찬바람이 부네요.
옷 든든히 입고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

요즘 눈에 자주 띄는 책이 한 권 있어요.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인데요. 주변에 많은 분이 좋다고들 추천하길래, 책 소개를 찾아 읽었어요. 그중 한 구절이 마음에 훅 와닿았습니다.

"우리 삶엔 결코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단순 담박한 삶이 최상의 삶이다." 

단순한 삶. 이 책이 말하는 기본이 바로 그것일까요? 그러고 보니 세계적인 부자들도 공통적으로 말하더군요. "일상을 단순화하라"고요. 그런데 꿈을 좇다 보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에 불안이 끼어들고, 때로는 나의 체면이 앞섭니다. 그럴 때마다 만사는 어렵고 복잡하게만 느껴졌어요.

레스 웨이스트를 실천해보자고 말하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콘텐츠를 만들 때에도, 협업 파트너를 만날 때에도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 고민을 거듭합니다. 이 메시지도 말하고 싶고, 그 포인트도 중요하게 다루고 싶어서요. 하지만 팀의 욕망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때, 누군가 한 명이 나서서 일시정지 버튼을 누릅니다. 그리고 다시 기억 해내요. '레스벗그리너가 딱 한 가지만 말해야 한다면, 그게 뭐지?'

레스벗그리너의 심플한 로고도 이런 과정에서 탄생했어요. 잘하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고 단순하게 만드는 일,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레스벗그리너의 디자이너 현수 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레스벗그리너 디자이너 오현수입니다.

지난 1년간 브랜드를 전개해오면서,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저희 제품 디자인을 좋아해주셨어요. 간결하고 명확하다고 하시면서요. (부끄럽지만, 감사합니다 :) ) 그래서 오늘은 제가 저희 브랜드 로고 디자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레스벗그리너(less but greener)의 이름은 독일 산업디자이너 디터람스의 철학, ‘Less but better’에서 시작됐어요. 덜어낼수록 좋다는 맥락으로 ‘필요한 만큼 사용’하는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죠.

‘Less but better’. 심플하고 간결해 보여서 실천이 어렵지 않은 철학처럼 보이는데요. 브랜드를 만들면서 보니, 생각보다 실현하기 어려운 철학이더라고요. 이 가치를 기반으로 브랜드 로고를 만들며 어떤 고민을 했는지 이야기해 볼게요.

레스벗그리너의 핵심, '미니멀리즘'

레스벗그리너 브랜드 로고는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코파운더 동일 님과 동진 님이 공유해주신 PPT 파일 10장에서 만들어졌어요. 이 자료에는 우리가 갖춰야 할 키워드와 여러 레퍼런스 브랜드가 담겨 있었는데요. 브랜드 기획 초기에 만들어진 문서라 지금과는 내용이 달라진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저희가 핵심 키워드로 삼는 게 있어요. 바로 '미니멀리즘'입니다.

브랜드 명에도 직관적으로 'less'를 넣었으니, less의 방향을 명확히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요. 그 반대였어요. ‘덜’이라는 부사는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물성도 없고, 정의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글자로만 이루어진 로고를 쓸까 싶다가도, 심볼 아이콘이 없으면 너무 심심하게 느껴지진 않을까, 하고 고민됐어요. 

다시 본질에 집중하기

저에게는 무언가를 덜어내는 게 더하는 것보다 어렵게 느껴져요. 살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난감한 것처럼요. 오랜 노력 끝에 입시에 성공했을 때에도 뛸듯이 기뻤고, 처음 제 힘으로 돈을 벌었던 순간엔 벅찼어요. 이런저런 상황을 떠올리다 보면 결국 ‘가장’이라는 기준 앞에서 아무것도 고르지 못합니다.

로고를 제작하면서도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고려해야 할 부분이 늘어났어요. ‘Less’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더해,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나타내야 했어요. 갈수록 복잡하고 난해해졌습니다.

덜어낸다는 뉘앙스로 글자를 흐릿하게 해볼까? 

너무 1차원적인 표현 아닐까?

요소가 너무 많아지면 안 되는데...

그래서 딱 하나의 포인트에 집중하기로 결정합니다. ‘적을 수록 좋다’. 우리의 근본이 되는 철학이자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죠. 아름답고 실용적인 것들이 무한 탄생하는 요즘 시대에, 이로운 선택을 하려면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면, 불필요를 덜어낼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유용한 것이라도 나에게 적합하지 않으면 삶을 무겁게 만들잖아요. 

그렇게 덜어내는 행위에 따른 결과를 로고로 보여주기로 했어요. 조금 줄였더니(less) 삶이 더 가볍고 건강해졌다(but greener)는 맥락으로요. ‘but greener’ 부분이 위로 붕 떠 있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 비롯했어요. 

폰트와 컬러는 기본에 충실하게

폰트도 미니멀한 느낌을 주는 '산 세리프체' 획에 삐침이 없는 글씨체. 한글 폰트로는 '고딕체' 를 사용했어요. 한편 미니멀한 삶은 단순하지만, 그 누구보다 내면에 강한 힘과 단단한 기준을 갖춘 삶이에요. 이 단단함을 살리기 위해, 폰트 굵기는 볼드하게 디자인해서 힘 있는 느낌을 넣었어요. 컬러는 따뜻한 녹색으로 정했어요. 직관적으로 자연의 이미지와 선선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나타내고 싶었어요.

휴, 로고를 만들면서 정말 오래 머리를 쥐어짰는데, 로고가 너무 단순하죠? 하하. 그래도 개인적으론 필요한 부분만 남겨 직관적인 비주얼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저희 브랜드의 방향성을 생각해봐도, 화려한 꾸밈이나 장식 요소는 불필요할 테니까요. 

이렇게 레스벗그리너 팀원들의 만장일치로 지금의 로고가 만들어졌습니다! 심볼 없이 텍스트로만 표현됐지만, 그렇기에 저희의 정체성이 더 명확히 드러나는 것 같아요.

덜어내는 일. 로고 디자인은 일부일 뿐, 모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 같아요. 제 삶에서도 그렇고요. 여러 매체나 타인의 삶을 통해 이런 저런 기술과 경험을 채워넣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요. 하지만 삶의 빈 공간을 자꾸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습관적으로 '단순한 삶'을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럼, 오늘의 글은 이렇게 마칠게요. 앞으로도 레스벗그리너가 무엇을 덜어가는지 지켜봐주시고, 함께 동참해주세요!